Rumination? Rumi-Nation!

김주환 (미술평론가. 연세대 교수)

 

로스트(LOST) 시리즈의 의미

      전병삼 작가의 이번 개인전은 전세계 193개국의 국기(National Flags) 이미지에 그의 로스트 시리즈 작업 방식을 적용한 작품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로스트 시리즈는 모멘트(MOMENT) 시리즈와 함께 전병삼의 작가 정체성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로스트 시리즈는 앞으로도 계속 그의 작품 세계의 일관성과 확장성을 동시에 보여주리라 믿는다. 

      "로스트"는 사라져버렸으나 여전히 존재하고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존재 하되 있어야 할 시간과 장소로부터 벗어나 있는 상태인 것이다. 눈 앞에서 사라졌으나 그렇다고해서 존재 자체가 소멸된 것은 아닌 상태를 우리는 보통 "잃어버렸다"라고 표현한다. 무엇인가를 잃어버렸을 때, 그것이 결코 완전히 파괴되거나 소멸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분명히 안다. 잃어버린 것이 휴대폰과 같은 사물이든, 옛 친구와 같은 사람이든 마찬가지다. 그것 혹은 그 사람은 어디엔가 지금 분명히 존재하고 있을 것이다. 다만 내가 지금 여기서 더 이상 보거나 만지거나 경험할 수 없을 뿐이다. 

      어떠한 대상의 존재 방식이 근본적으로 달라졌을 때에도, 우리는 "잃었다"라고 표현한다. 물 분자 하나를 분해하면 수소와 산소로 나뉜다. 물은 기존의 존재방식을 잃고 사라져버린다. 그러나 수소 원자 두 개와 산소 원자 하나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여전히 존재한다. 물은 로스트됨으로써 새로운 존재양식으로 존재한다. 이러한 "로스트"는 우주의 모든 사물의 존재양식이다. 실체가 사라지면 그 자리에 에너지가 나타난다. 또 동시에 에너지가 들뜨고 뭉침으로서 사라지는 자리에는 질량을 지닌 사물이 나타난다. 결국 모든 것은 늘 사라지게 마련이지만 사라지는 모든 것은 늘 새로운 존재방식으로 나타난다. 

      로스트 시리즈는 이러한 세상의 이치를 간결하고도 아름답게 드러내고 있다. 존재하는 것의 존재 방식을 대폭 바꿈으로써 그 대상의 끊임없는 사라짐과 재현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전병삼은 이처럼 하나의 이미지, 그 이미지의 세밀한 분할, 그 분할된 이미지의 새로운 결합 (모멘트 시리즈), 그렇게 결합된 이미지의 시간의 축에 따른 나열(로스트 시리즈)을 통해 우주의 기본 작동 방식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내재질서와 내향적 펼쳐짐

      이차원의 사진 이미지를 한번 접으면 접힌 선이 생긴다. 전체 이미지는 그 일차원의 선 하나로 접혀들어가 사라져버린다. 그 선 속으로 접혀 들어가서 함축된(implicated) 2차원 평면의 전체 이미지는 우리 눈 앞에서 사라져 버리지만 없어지거나 파괴된 것이 아니다. 어딘가에는 분명 존재하고 있다. 이차원 평면의 이미지 전체가 차원을 달리하여 1차원의 선 하나로 함축되어 들어가 있는 것이다. 이는 물리학자 데이빗 봄의 핵심개념인 내재 질서(implicate order)와 내향적 펼쳐짐(enfolding)의 아름다운 사례라 할만하다. 

      특정한 이차원의 이미지에 대해 "접는" 작업을 반복하고 접혀진 일차원의 선들을 하나 하나 다시 쌓으면 이차원의 평면이 생긴다. 물론 쌓아올린 전체 덩어리는 육중한 삼차원의 직육면체 오브제다. 그 오브제의 한 면에 다양한 이미지가 드러난다. 일차원의 접힌 선들이 쌓아 올려져서 만들어진 신비로운 이미지가 드러나는 것이다. 이차원의 이미지가 일차원의 선으로 접혀져 들어갔다가(enfolding) 다시 외향적으로 펼쳐져나오면서(unfolding) 새로운 이미지를 생성해낸다. 그런데 이 새로운 이미지는 사실 원래 이미지에 함축되어 있던 것이다. 하나의 이미지는 하나의 선으로 접혀져 들어가 사라진 다음에야 다시 무수히 다양한 이미지로 펼쳐져 나온다. 이때 어떤 것이 원래 이미지인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모든 이미지가 다 한 존재의 다양한 방식일 뿐이다. 색이 곧 공이고 공이고 곧 색이듯이.    

      어느 부분을 어떻게 접느냐, 그리고 어떠한 순서로 쌓아 올리느냐에 따라 새로이 생겨나는 이차원의 평면에 드러나는 이미지들은 매우 다양하다. 심지어 원래 이미지가 그대로 재현되기도 한다. 이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그의 작품 씬: 모나리자(THIN: Mona Lisa)이다. 사실 원래 이미지가 그대로 재현되는 것은 확률적으로 매우 낮은 가능성이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마치 빅뱅 이후의 우주가 이런 모습이 된 것이 확률적으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낮은 것이기는 하지만 제로가 아닌 것처럼. 

 

로스트 시리즈와 생성질서

      모멘트-모나리자는 전병삼이라는 작가의 작품 활동 전체를 놓고 보았을 때 그의 삶과 작업과 인생의 전환점을 모두 함축(implicate)하고 있는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게다가 이차원의 이미지 전체를 접어서 쌓아올렸다는 점에서 후속 작품들과도 구별된다. 그야말로 전체 이미지들이 내향적으로 접혀들어가고 다시 3차원의 커다란 덩어리로 펼쳐져 나오면서 그 한 면을 통해 원래 이미지를 드러내보이는, 극적인 반전들을 조용히 내포하고 있는 놀라운 작품이다.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서 작가는 그렇게 3차원으로 쌓을수 있는 방법이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실험적으로 증명해 보였다. 실제로 각기 다른 방식으로 두 덩어리의 모나리자를 쌓아올린 것이다. 그 두 작품을 바라보고 있자면 “봐라! 이렇게 되는거다”라고 외치는 작가의 목소리가 들리는듯 하다. 이러한 입증을 바탕으로 작가는 그 다양한 쌓아올림의 한 측면의 이미지들을 쭉 모아서 시간의 축에 따라 펼쳐 놓는다. 시간의 축에 따라 수많은 일련의 이미지들은 동영상으로 펼쳐진다. 이것이 일련의 로스트 시리즈다. 실물을 통한 실험을 통해 우선 보여주어 입증한 다음에 고집스럽게 후속 작업을 진행하는 그의 태도에서는 엄밀한 과학자의 자세마저 느껴진다. 얼마전에 처음 방문해 본 그의 작업실에는 실제로 이러한 다양한 “실험”의 흔적들이 도처에 널려 있어 강한 인상을 받았다.

      작가는 로스트: 모나리자(LOST: Mona Lisa)를 통해 일차원의 선들을 어떻게 쌓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이차원의 이미지들이 나타나기시작한다는 걸 보여주었다. 하나의 이미지를 위에서부터 아래로 차근차근 얇게 접었을때 나타나는 일차원들을 쌓으면 수많은 이미지들이 나타난다. 이 수많은 이미지들은 원래 이미지로부터 생성된 것이다. 원래 이미지와는 같지 않지만 그렇다고 다른 이미지인 것도 아니다. 원래 이미지의 접혀져 들어감을 통해 생성되어 나오는 수많은 이미지들은 동일자는 아니지만 그렇다고해서 별개인 것도 아니다. 그야말로 불이론(non-dualism)의 훌륭한 사례이며 또 동시에 봄이 말하는 생성질서(generative order) 개념의 핵심을 간결하게 보여준다. 

      이렇게 생성된 수많은 이미지들에 시간의 차원을 더해 풀어냈으니 말하자면 이는 2+1차원인 셈이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2차원의 이미지를 1차원으로 접었다가 다양한 방식으로 펼쳐 놓으면서 다시 거기에 시간의 차원을 더 하고 있으니, 2차원—>1차원—>1+1+1 차원으로, 그야말로 차원을 넘나들고 있는 것이다.

      전병삼은 이러한 방식으로 많은 것들을 사라지게 했다가 다시 펼쳐놓는다. 접혀져 들어가는 하나의 선, 혹은 찰나의 순간들을 다시 쭉 펼쳐놓음으로써 실체란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현대 물리학의 존재론을 작품을 통해 입증해보이고 있다. 전병삼의 로스트 시리즈는 이런 점에서 예술의 탈을 쓴 과학이라 할만하다. 로스트 시리즈에 마주서게되면 우리는 어쩔수 없이 존재와 인식이라는 낡고 오래된,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지 않을수 없게 된다. 우주의 본질적 모습이 내면적 질서 (혹은 접힌 질서=implicate order)와 내향적 펼쳐짐(enfolding)이라는 데이빗 봄의 주장의 핵심을 그대로 아름답고도 간결하게 표현해 놓은 것이 로스트 시리즈다. 만약 모멘트와 로스트 시리즈들을 봄이 봤다면 엄청 기뻐했으리라.

 

근대 국가를 넘어서기: 국기에 대한 내향적 펼쳐짐

      전병삼의 로스트 시리즈가 전세계 모든 국가들의 국기 이미지에 적용된다는 것은 사회과학적으로도 큰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 정치학을 포함해서 대부분의 사회과학들이 지향하는 "과학"의 의미는 데카르트나 뉴튼이 만들어 놓은 17-18세기의 기계론적 세계관에서의 "과학"이다. 현대 물리학은 고전물리학의 기계론적 세계관에서 벗어난지 오래다.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거쳐 홀로그래픽 우주론 등이 현대물리학의 기본적인 세계관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학 등의 사회과학은 여전히 17세기 고전물리학의 기계론적 세계관에 머물러 있다. 현대 사회과학은 여전히 부분(입자)가 모여서 전체를 구성하고 있으며, 전체를 이루는 부분과 부분의 상호작용을 분석하여 그 구성요소들 간의 인과관계를 밝히는 것이 "과학"이라고 믿고 있다. 물리학에서는 오래전에 폐기처분된 세계관을 여전히 신봉하고 있는 셈이다. 

      예를 들어 정치학에서는 개인들이 모인 것이 사회이고, 국가들이 모인 것이 국제사회라고 파악한다. 부분은 전체에 우선하는 보다 근본적인 것이며, 전체는 부분들이 만들어낸 하나의 추상적인 존재라 보는 것이다. 그러나 봄은 이러한 기계론적 세계관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전체야말로 구체적인 실체이며 오히려 한 개인이나 한 국가와 같은 부분이 인간의 자의적 개념화가 생산해낸 추상적인 것이다.  

      봄은 기계론적 세계관으로도 어느 정도 이 우주의 작동 방식을 설명할 수는 있지만 (당구공이나 로켓의 움직임을 고전물리학으로 예측하는 것 등) 이러한 경우는 어디까지나 본질적으로 내재적 질서인 우주의 특수한 상황에 불과하다고 본다. 개별적인 사물이라는 모습으로 드러나 서로 구분되는 것처럼 보이는 모든 것은 (그것이 전자든 원자든 개인이든 국가든) 마치 물결이나 파도처럼 표면적인 것일 뿐 사실 우주는 하나의 전체라는 것이다. 표면 아래에서 드러나지 않는 전체로서의 질서가 바로 내재적 질서고, 내재적 질서의 일부가 표면에 드러나는 것이 외재적 질서(explicate order)다. 기계론적 세계관이 세상의 본질적 모습이라 착각하는 것이 바로 이 외재적 질서인데 이는 사실 내재적 질서의 극히 일부이며 특수한 한 형태에 불과하다. 마치 수면 위의 물결이라는 외재적 질서가 바다 전체라는 내재적 질서의 극히 일부인 것과 마찬가지다. 외재적 질서에서 사물들 사이의 상호작용이 외향적 펼쳐짐인데, 이 역시 내재적 질서의 작동 방식인 내향적 펼쳐짐의 한 특수한 형태다. 

      봄의 관점에서 보자면 개개의 국가들은 인간의 자의적 구분이 만들어낸 추상에 불과하다. 구체적인 실체는 지구상에 살고있는 전체로서의 인류다. 전병삼은 국기이미지에 대한 "접기"를 통해 국가라는 실체 역시 내재적 질서로 파악해야 함을 암시하고 있다. 내재적 질서의 관점에서 "국가"라는 실체를 보자면 개별적인 국가들이 모여서 "국제질서"를 이뤄낸다기보다는 전체로서의 국제질서 속에서 인위적인 나눔과 구별을 통해 개개의 국가들이 생성되어진 것이다. 매체의 역사가 분명히 말해주듯이 국가라는 것 자체가 대중매체가 만들어낸 하나의 산물이다. 인쇄매체가 만들어낸 것이 퍼블릭이라는 개념이며 대중매체가 만들어낸 것이 평등한 군중이라는 개념이다. 기본권을 지닌 "개인"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게 된 것은 인쇄매체를 읽는 "퍼블릭"이라는 존재가 생겨난 덕분이다. 1인 1표의 보편적 투표제가 널리 받아들여지게 된 역시 라디오와 TV가 대중(mass)을 생산해낸 20세기 중반 이후다. 

      국가(nation)는 반드시 상징으로서의 국기가 필요하다. 서로 다른 문화를 지닌 다양한 인종들이 모여서 하나의 국가를 이루는 것이 내셔널리즘이다. 한국에서 내셔널리즘을 "민족주의"라고 번역하고 있는 것은 대단한 오역이다. 네이션은 민족이 아니다. 특히 한국에서는 "단일 민족이 만들어낸 오랜 역사의 국가"라는 점을 들어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것은 종족주의이지 내셔널리즘이 아니다. 서로 다른 여러 인종들이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를 극복하고 하나의 국기 아래 통합된 것이 근대민족국가다. 단일 민족임을 강조하는 근대국가란 난센스다. 

      봄 식으로 말하자면 국가는 자의적인 구분을 통해 생겨난다. 자의적인 구분이라는 행위의 결정판은 전쟁이다. 전쟁을 통해 근대국가들은 완성되었다. 인쇄매체에 기반한 상상의 공동체 덕분에 1차세계대전이 가능했고 영화나 라디오 등을 통한 애국심 고취의 매스커뮤니케이션 덕분에 2차세계대전이 가능했다. 히틀러의 라디오 연설을 생각해보라. 인쇄매체와 대중매체 덕분에 한 국가의 언어가 통일되었고 "표준어"라는 개념이 탄생했다. 그러한 언어를 기반으로 흔히 애국심이라 불리우는 감수성의 생성이 가능했고, 그 덕분에 국가 간의 전쟁이 가능해졌던 것이다. 그 이전의 인류 역사상의 전쟁은 국가간의 전쟁이라기보다는 왕가나 정권간의 전쟁 혹은 도시 간의 내전에 불과했다. 

      근대 국가들의 핵심적인 존재 방식이 국기다. 국기가 곧 국가다. 국기는 상징에 불과하다. 하지만 국가 자체가 하나의 의미의 덩어리고 상징이다. 전체성의 관점에서 봐야 실제 살아 숨쉬는 인간들이 보인다. UN은 말하자면 국가들의 모임이자 국기들의 모음집이다. 이제 전병삼은 로스트 시리즈를 통해 그 국기들을 해체하고 사라지게 하고 잃어버리게 하는 작업을 선보인다.  "국가"라는 환상을 거둬내고 살아숨쉬는 인간들의 전체로서의 생활세계로 복귀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내향적 펼쳐짐의 세계관이 확산될 수록 국가를 단위로 하는 전쟁이나 갈등이 근본적으로 사라지게 될 가느다란 희망을 보게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