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UMINATION: Nations in Metaverse> 새로운 세계의 아트에 대한 생각

정지훈 (최고비전책임자, 모두의 연구소)

 

      1917년 뉴욕의 앙데 팡당 미술전. 한 예술가가 보낸 흰 변기가 도착했다. 이 변기는 당시 떠오르는 유명 아티스트로 명성을 떨치던 마르셀 뒤샹이 보낸 것이었고 현대미술과 아트라는 것의 본질에 대한 무수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그는 일상적인 것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었고, 예술이라는 것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로부터 10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난 2021년, 현실 세계에 물체로 존재하는 것들만 예술로 생각하던 사람들에게 중대한 변화가 찾아오게 된다. 디지털 기술로 만들어지고, 비트(bit)라는 0과 1로 구성되면서 무한복제가 가능하다고 믿어 왔기에 제대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던 디지털 세계의 데이터 덩어리에 한정성을 부여하여 거래가 가능하다는 것을 발견한 여러 아티스트들이 뉴욕을 시작으로 하여 새로운 아트의 생태계를 열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이런 기술의 본질적인 개념과 특성을 온전히 이해하고, 진짜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넘나드는 아트 작품을 개념적으로 구상하고 실제 구현해낸 작가들은 많지 않다.

 

      전병삼 작가는 현재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NFT(Non-Fungible Token, 디지털 데이터에 한정성을 부여하는 기술) 기반의 아트 작품들이 나오기 이전부터 디지털 기술을 현실 세계에 현현시키는 개념의 작업들을 무수하게 만들어왔다. 이런 시도는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처럼 디지털 미디어를 TV라고 부르는 스크린과 컴퓨터를 연결하여 물질적인 완결성을 갖춘 작품에서 시작했는데, 백남준과 같은 위대한 예술가도 결국 디지털이라는 무한의 세계에 존재하는 자유로운 데이터를 아날로그의 감옥에 가두는 정도로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전병삼 작가는 대규모 설치예술로 세계적인 명성을 쌓아오면서도, 동시에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넘나들며 눈에 보이지 않는 것과 보이는 것의 관계를 이야기하는 멋진 작품들을 많이 만들어왔다. 심지어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는 나노(nano)의 세계에서만 볼 수 있는 영화를 만들거나, 전 세계나 우주를 작은 공간 안에 포개어 넣는 종류의 작업도 많이 해왔다. 그 중에서도 2016년 12월 처음으로 선을 보였던 <LOST> 시리즈의 경우 ‘사라지는 것에 대한 작품화’ 라는 파격적인 개념을 소화하기 위해서 다양한 사물의 외관을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시도를 했던 작품이었다. 관객들에게 사라진 물체의 이름과 1분짜리 줄무늬 루프 영상만을 제공했는데, 사라진 피사체의 이미지를 위에서 아래로 30초, 아래에서 위로 30초 동안 스캔하며 만들어진 디지털 아트를 마치 캔버스 같은 디스플레이에 담아 탄생시켰다. 이는 존재라는 것에 대한 무한한 성찰을 보여준 시도였지만, 한편 존재하지 않는 실체를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여 표현하기 위해 백남준과 같이 작품을 디스플레이라는 물체에 가두는 선택을 해야 했기 때문에 해당 작품이 가지고 있는 진정한 의미를 다소 훼손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던 그에게 NFT라고 하는 무형의 디지털 데이터를 한정화하는 기술이 주어졌으니, 진짜 제대로 된 시리즈를 만들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 아닐까?

 

      전병삼 작가의 작품세계를 오랫동안 지켜봐 왔는데, 그처럼 ‘기술(technology)’이 가지고 있는 예술적이고 핵심적인 개념 가치를 가장 정확하고 명확하게 파악하고 활용하는 작가를 본 적이 없다. 그에게 주어진 NFT라고 하는 새로운 기술은 ‘사라지는 것들의 형상화’라는 <LOST> 시리즈의 핵심적인 메시지를 진짜로 제대로 구현할 수 있는 도구가 되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LOST> 시리즈 작품을 OpenSea를 통해 처음으로 세상에 공개하면서 원래 작품이 가지고 있었던 의미를 가장 완벽하게 구현해 내었다. 이번에 DeNations와 함께 전시하는 새로운 <LOST> 시리즈는 그 스케일이 더욱 엄청나게 커졌다. 단순히 형상화된 물체를 사라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193개 나라의 상징인 국기를 대상으로 하여, 수많은 사람들과 땅, 그리고 유무형의 집합적인 거대한 존재인 ‘국가의 사라짐’ 이라는 개념을 블록체인 기술의 NFT 기술로 구현하여 디지털 세계에는 원래 존재하지 않는 국가라는 개념을 ‘사라지지 않는 존재’로 구현한다는 매우 상징적인 작업을 하였다. 더 나아가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아트’라고 하는 것의 진정한 정체와 ‘아트작품’이라는 것의 본질이 무엇인지, 그리고, 여러 국가들이 만들어가는 문명과 아트의 연관성에 대해서도 새롭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작품은 국가의 존재와 정체, 그리고 교류와 디지털 기술로 연결된 세계에서의 국가의 역할과 가상 국가의 탄생과 새로운 문명에 이르는 엄청난 스케일을 질문을 던지고 있다.

 

      더 나아가서는 아트와는 완전히 관계가 없어 보이는 블록체인 기반의 카드 문명의 세계라고 할 수 있는 DeNations의 새로운 아트 유니버스인 DeNations Art Chain에서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아트작품들을 지속적으로 가상의 문명에 추가하게 만드는 그 첫 번째 제네시스 블록에 담긴다는 스토리텔링도 너무나 매력적이다. 과거에는 전혀 연관을 짓기 어려웠던 아트와 디지털 기술, 블록체인과 국가, 문명과 게임이라는 이질적인 개념들이 아무런 마찰없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것을 바라보면서 진짜 새로운 초현실적인 또 하나의 세계, 또 하나의 문명이 시작되는 것을 우리가 목격하고 있다. 새로운 디지털 세계의 창세기의 시작이다.